마이코로 데뷔한 지 2,3년이 지나고 나서 출장에 가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어요.
동경, 센다이, 큐슈…해외에 가는 일도 있곤 했었어요.
마이코로서 출장을 간다는 것은 굉장히 있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해외라도 가게 되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은 벌써 이사라도 가는 것과 같이 느껴졌었어요.
의상의 부피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베개와 신발 등. . .
마이코의 물건은 하나하나가 높이가 높기 때문이에요.
드디어 가게 되시는 샤미센의 연주를 담당하는 언니께서도 정말 힘드세요.
그래, 그 언니를 생각해 보자면 당시 샤미센을 접어서 넣어두시곤 하였어요.
하나의 샤미센을 세 개로 나누어서 아타셰케이스(서류가방)정도의 크기인 가방에 보관하셨어요.
해외출장을 할 때, 입국과 출국 카운터에서 언제나 한바탕의 소동이 일어나곤 했답니다.
X선 화상에서 샤미센이 라이플 총으로 보이는 것같아서, 언제나 몸짓과 손짓이 수상한(?)
영어로 언니께서 샤미센의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지만, 잘 듣고 있으면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 뿐으로, 전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셨어요.
지금은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이코상도 계시지만, 옛날에는 그런 마이코상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해외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든 일이 되곤 했었습니다,
다른 마이코상으로부터는 3일 간, 아침, 점심, 저녁 오렌지주스와 계란샌드를 먹은 이야기도
들은 일이 있어요. 그것 밖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었던 것 같았어요.
돌아오고 나서는 곧바로 오렌지주스와 계란샌드만 보아도 헛구역질이 나는 것같은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를 끌어안고 웃었답니다.
해외의 호텔은 침대가 높아서 발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닫기로 껑충 다이빙을 해서 침대에
안착하면 머리모양이 흐트러진다던지, 샤워기를 머리부터 사용해버렸다던지…
꽁트같은 이야기가 산처럼 많이 있어요.
그래도, 그 시절에는 무엇이 있더라도 무엇을 하고 있어도, 즐거웠었어요.
기념품으로 구입한 싱가폴 항공의 CA(당시는 스튜어디스상)의 제복이 있었지만
모두로부터 거부당했기에, 결국 장롱 구석에 있게 되어버렸다는 슬픈 추억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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